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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 무형유산으로 승격..“고기 없는 한식의 정수”

2025.05.19. 오후 02:00
 불교의 생명 존중 사상에 뿌리를 두고 각 사찰에서 고유하게 발전해온 ‘사찰음식’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은 5월 19일, 사찰음식을 국가무형유산 중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특정하지 않고, 지역 공동체 혹은 문화 집단이 집단적으로 전승하는 문화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사찰음식의 특성과 잘 부합한다는 평가다.

 

사찰음식은 불교의 계율 중 하나인 ‘살생을 금지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이로 인해 고기나 생선은 물론, 오신채로 불리는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 등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수행의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자극적인 맛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단순한 채식을 넘어 수행과 명상, 신체와 정신의 조화를 중시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 고기 대신 산나물, 제철 채소, 콩류 등을 활용해 건강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사찰음식은 오랜 시간 우리 식문화와 상호작용하며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고려시대 문헌인 『동국이상국집』, 『조계진각국사어록』, 『목은시고』 등에서는 채식만두, 산갓김치 등 사찰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이 언급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의 『묵재일기』와 『산중일기』를 통해서는 사찰이 두부와 메주, 장류 등 발효음식의 중심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사찰은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와 식문화를 공유하는 중요한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에도 사찰음식은 승려들의 수행식으로 실천되고 있다. 특히 ‘발우공양’이라 불리는 전통 식사법은 음식을 남기지 않고, 청결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에 집중하는 수행의 연장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일상적인 식사조차 수행의 일부로 여기는 태도는 사찰음식에 깊은 철학적 배경을 부여한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의 식문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웰빙과 비건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사찰음식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파인다이닝 업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5’에서 3스타를 획득한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정관 스님(백양사 소속, 사찰음식 대가)과 조희숙 셰프(2020년 아시아 베스트 여성 셰프 수상자)로부터 받은 사찰음식 교육이 요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밝히며, 사찰음식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국가유산청은 “사찰음식은 발효식 중심의 조리 방식, 제철·지역 식재료 사용, 그리고 사찰이 위치한 지역 고유의 향토성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다른 국가의 불교 음식 문화와 뚜렷이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통적인 조리법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게 창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점에서, 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지정으로 사찰음식은 아리랑(2015년), 씨름과 김치담그기(2017년), 장 담그기(2018년), 윷놀이(2022년), 한글서예(2025년) 등에 이어 공동체 종목 국가무형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이로써 공동체 종목은 총 23개가 되었으며,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새로운 무형유산 발굴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은 향후 사찰음식에 대한 학술 연구와 교육, 전승 활성화 프로그램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더불어, 국민과의 공유와 참여를 통해 전통문화의 현재적 의미를 살리고,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문화유산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사찰음식의 국가무형유산 지정은 단순한 전통음식의 보존을 넘어, 생명 존중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불교 정신이 담긴 식문화가 한층 더 널리 알려지고 계승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